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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과 명예 / 김현경
작성자 황진아 등록일 2018-04-04 조회수 2749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미디어의 발달 덕택에 오늘날 성범죄는 법의 심판을 받기 전에 먼저 여론의 재판을 거치는 경향이 있다. 그 재판은 종종 성대결의 양상을 띤다. 배심원들이 남녀로 갈려서 남자들은 피고를 편들고 여자들은 원고를 편드는 것이다. 

가장 자주 격론이 벌어지는 지점은 원고가 피고에게 성적 접근을 허락했는지 여부다. 예를 들어 모텔까지 따라간 것은 몸을 허락한다는 뜻이 아닌가? 많은 남자들은 그렇다고 믿는다. 반면 여자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모텔에 같이 간 것은 물론이고, 침대에 같이 누운 것도 동의의 표시가 될 수 없다. 동의는 분명하게 말로 표현되어야 한다. “싫다는 말은 싫다는 뜻이다.” 많은 남자들은 성폭력의 기준이 이렇게까지 엄격해지는 것에 반발한다. 연애는 낭만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일부 여자들도 애석함을 표시한다. 키스할 때마다 매번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남녀 관계가 너무 삭막해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이런 논쟁의 한계는 성폭력이냐 아니냐를 판정하는 데 있어서 동의의 유무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동의한 행위가 뒤늦게 폭력과 연결되고 폭력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교제 중인 남녀가 동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 다음날 남자가 친구들에게 말한다. “야, 나 걔 따먹었어. 보기보다 쉽던데?” 뒤늦게 여자는 자신에 대해 어떤 소문이 퍼졌는지 알게 되고 그 소문의 진원지가 어디인지도 알게 된다. 이런 상황은 강간을 당한 것 못지않게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 동의는 평등한 관계를 전제한다. 그러나 성관계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지 않다. 상징적인 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현실적인 권력관계를 무시하고 동의에 대해서만 따지는 것은 성폭력의 범위를 심각하게 축소한다. 

전에는 혼인빙자간음죄라는 것이 있어서 이런 경우에 남자를 고소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법은 낡은 정조관에 입각해 있다는 이유로 폐지되었다(이 법은 여성에게는 정조라고 불리는, 특수한 성격의 자산이 있고 여성이 결혼할 때 이 자산을 일종의 혼수품으로 가져간다는 관념을 바탕에 깔고 있다. 혼인빙자간음죄란 거짓 약속으로 남의 정조를 빼앗는 일종의 사기죄다). 문제는 법이 정조라는 관념을 버린 뒤에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이 관념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여성에게는 여전히 남성에게는 없는 특수한 명예가 있다고 여겨진다. 합의에 의해 성관계를 가졌는데도 여자들이 언제나 더 쉽게 상처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한 성범죄의 공론화가 명예형의 성격을 띠는 것을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은 사실 근대 형법 정신과 충돌한다. 미투 운동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재판정에 서기도 전에 사회적으로 ‘성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 게다가 이 낙인은 법적으로 처벌을 받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째서 우리는 성범죄에 있어서만큼은 이러한 낙인이 필요하다고 믿는 것일까? 이것은 성폭력이 본질적으로 명예에 대한 범죄라는 사실과 분명히 관련이 있다. 미투 운동을 통해서 여성들은 부적절한 성행위가 여성의 명예뿐 아니라 남성의 명예 역시 손상시킬 수 있음을 알리려 한다. 

트위터와 명예형의 결합은 낯설어 보이고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에게 가해지는 상징폭력을 법이 효과적으로 막아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여성들은 당분간 이런 형식의 투쟁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기사입력 2018-02-21 18:46 최종수정 2018-02-21 19:1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2399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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