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을 당한 여성 3명 중 1명이 증거물 채취 전에 샤워를 하는 등 피해자와 경찰의 미숙한 초동 대처가 성폭력 범죄 수사를 어렵게 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14일 국과수 유전자감식센터가 발표한 ‘2012년 하반기 수도권에서 의뢰된 성폭력 사건에 대한 통계적 고찰’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7∼12월 국과수가 DNA 증거물 감식을 의뢰받은 서울과 경기 일대의 성폭력 사건 1018건을 분석한 결과 성폭력을 당한 피해 여성 가운데 35%가 유전자 증거물을 채취하기 전 샤워 또는 질 세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폭력을 당한 후 샤워를 할 경우 증거물에서 가해자의 DNA가 검출될 가능성이 대폭 줄어 피해자 스스로 범죄 증거물을 없애는 셈이 된다.
뒤늦은 신고 등으로 성폭력 범행 가해자의 정액 등 증거물을 채취한 시각이 범행 발생 후 24시간이 지난 경우가 전체 사건의 44.7%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폭력 범죄 후 24시간은 가해자 DNA가 온전히 검출될 수 있는 마지노선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경찰의 초동 수사도 여전히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범죄 관련 증거물이 국과수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나흘 이상 걸리는 경우가 50% 이상이었고 1주일을 넘겨 도착하는 경우도 25%에 달했다.
성폭력 증거물이 국과수에 도달하는 시간은 1∼3일이 가장 적당하지만 이 기간을 지킨 경우는 31%에 그쳤다.
경찰이 성폭력 현장 등에서 확보한 남녀 DNA를 보낼 때 피해자 DNA를 따로 보내지 않아 가해자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게 만드는 문제도 지적됐다.
남녀 DNA가 합쳐져 있는 증거물에서 가해자의 DNA를 구별하려면 비교할 수 있는 피해자 DNA가 필요한데 전체 사례 중 40%가 피해자 DNA를 함께 보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성폭력 사건에 관한 체계적 정보 수집을 위해 각 경찰서에 마련된 성폭력 응급키트 역시 사용 비율이 58%에 불과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성폭력 응급키트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찰도 있고 피해자 DNA 대조군의 중요성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피해 여성이나 경찰 대응이 여전히 미숙한 것에 반해 성폭행 후 피해자를 씻겨 증거인멸을 시도하거나 성폭행을 할 때 피임기구를 사용한 사례가 다수 보고되는 등 성폭력 가해자들은 증거를 없애는 데 갈수록 치밀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일보 이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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